참관활동2016.10.12 14:39

총회, 무엇을 위한 기구인가

나은수 목사

기장 제101회 정기총회가 지난 27~30일 경기도 화성시 라비돌리조트에서 종교개혁 500주년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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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장에는 700여 명이 넘는 목사·장로 총대들이 참석했다. 이번 총회의 분위기가 여느 때와 같지 않은 것은 총회 전 매스컴에 보도된 내용들 때문이다. 사실 기장은 민주화운동과 한국의 현대사에서 정의와 인권에 예언자적 목소리 내며, 사회선교와 교회일치를 위한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는 진보적 교단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단이 이번 총회에는 총장선출 논란과 총무의 공금유용, 성 추문 등의 일들로 곤욕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총회에서 이루어지는 결정사항들이 초두의 큰 관심사였다.

회무처리에 앞서 주제강연이 있었다. 강연자는 종교개혁이 오늘날 주는 교훈을 교회의 교회다움 회복이라고 했다. 기장 교단 차원에서 볼 때 기장다움의 회복으로 들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지금 기장은 정체성 혼란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기장의 기장다움의 회복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음을 느꼈다.

회의장 안은 회무처리와 안건에 대한 이견들을 조율하느라 애쓰는 분위기였다. 이와는 달리 회의장 밖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번 기장총회의 안건 중에는 총장인준과 총장선출과정에서 빚어진 이사회의 학생고발로 학생들과 교수가 사법당국에 기소된 한신학원 학내문제 처리라는 민감한 사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피켓을 들고 불법 총장선출 문제를 지적하며 총대원들에게 뜻을 전하는 막바지 시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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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총장인준 안은 부결로 일단락되었다. 회의장 안에 있던 학생들과 이를 지켜보던 이들은 환호하며 박수했다. 뜻이 관철되었음에 환영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기장은 이번 학교사태를 통해 행정의 허점을 드러내고 말았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 사법당국에 조사받는 학생들과 교수의 문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해법을 찾으려고 분주한 모습이었지만 초기대처 미흡으로 인해 지금은 손쓰기가 매우 힘겨워 보인다. 사건 발단이 되었던 공권력 개입에 대한 논란이 많다. 과거 한신이 공권력과 맞서 싸웠던 반면 최근 한신은 운영자들로 인해 공권력에 의지해 자신들이 보호받으려는 모습이 있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학내에서 빚어진 소요의 사태를 공권력의 힘에 의지했어야만 했을까? 또한, 그것이 적법한 조치였을까?

여기에 덧붙여 외국이민노동자 선교의 대부라고 하는 한 목사의 성추행 사건이 주목을 받고 있다.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의 심각성에 비해 총회에선 별다른 구체적 언급 없이 넘어가는 모습이었지만 결국은 감싸기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말았다.

이런 차에 물러나는 총회장이 남긴 말의 의미는 기장 교단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교회 안에서 우리는 남다르다는 묘한 자긍심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엔 우리도 별수 없다는 생각이다. 우리 안에 교만이 없지는 않았을까?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먼저 추스를 겸손함이 과제로 던져졌다. 자정 능력을 키우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한다.”

이번에 드러난 기장의 두 얼굴은 사회선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인지 총회에 참석한 총대들은 교단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말을 아꼈다. 그것은 좋지 않은 사건들이 여론에 부각 되면서 기장도 교단의 위신 실추와 교인 수 감소에 대한 우려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기장도 현실 앞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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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01회 총회는 특별히 에코총회라 했다. 회의장 밖에는 이를 홍보하는 부스도 있었고, 사전에도 여러 차례 홍보가 있었다. 일회용품 사용 자제는 생태환경 보호를 위한 작은 실천이다. 취지는 좋았다. 그러나 총회취지와 달리 회의장 밖엔 커피를 판매하는 곳과 식당 주변에 비치된 일회용 종이컵 등을 사용하고, 그뿐만 아니라 회의장 탁자에 일회용 물병들이 놓여있기도 했다. 총회 한 직원은 이러한 주변의 모습들이 에코총회에 비협조적이라는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좋은 취지를 앞으로도 계속 살려 나가려면 총대원들의 자발적 참여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일들에 대처하는 총회의 보다 세심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총회의 총대는 각 노회를 대표해서 참석한 목회자나 장로다. 회의장을 메운 총대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상정된 안건들에 관심을 두고 이를 지켜보며 제안과 질의를 통해 회의에 참석했다. 그러나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 회의록, 주제강연자료집, 그 밖에 여러 서류를 다 이해하며 회무처리를 한다는 것이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오전과 오후의 회의 참여율이 차이가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많이 피곤하리라 생각이 든다. 그러나 총대의 회의 참석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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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의 회의 진행에 있어 발언 시간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기장총회는 총대원들의 발언 역시 시간의 3분으로 제한을 두어 왔다. 발언에서 시간제한은 발언자의 발언 내용과 발언 취지를 보다 정확하게 정리해야 하기에 듣는 이들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발언 내용을 듣지 않아도 됐고 회의 진행의 시간을 아끼는 데 매우 효율적이라고 보인다. 총대들도 제한시간 안에 발언하려 노력했다. 다소 아쉬운 것은 장소가 넓다 보니 뒤에서 손을 들고 발언하려는 총대들을 의장이 미처 발견하지 못해 주변의 총대들이 발언권을 달라고 고함을 지르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장은 발언 기회를 공정하게 제공하려고 나름 애쓰는 모습이었다. 개인당 발언 횟수의 제한은 없었지만 같은 안건에 대해서 너무 많은 발언을 한 총대에 대해서 적절하게 제재를 하기도 했다. 제안 발언이나 진행 발언 안건의 발언 시 특별하게 상대를 향한 비하 발언이나 모독적인 발언은 있지 않았다. 듣는 이들 역시 다른 발언자에 대한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였다. 이렇게 힘겨운 사투 속에 총회의 많은 안건이 처리되었다. 이제 처리된 총회 안건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실행되도록 총회 산하 각 노회와 교회는 함께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마무리에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총회는 무엇을 위한 기구일까?

총회는 노회를 섬기기 위해 존재해야 하며 노회는 각 노회원인 목사를 섬겨야 하며, 목사는 맡겨진 노회의 지교회를 섬겨야 하는데, 바뀐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교회 위에 목사, 목사 위에 노회, 노회 위에 총회교단의 총회는 분명 가장 최상의 기관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가장 상부의 기관이라 해서 군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목사나 장로, 일반인들도 총회에서 일한다고 하면 목이 곧아지려 한다. 섬기라고 주어진 역할이 갑질하려는 위치를 확고히 해 나가려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데, 왜 자꾸 군림하려고 할까! 이를 보면서 총회의 근본적이고도 본질적인 구조적 모습이 바로 세워진다면 노회, 지교회, 목사는 그 역할에서 위화감 조성 없이 섬김의 바른 모습으로 맡겨진 일들을 해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 이 글은 뉴스앤조이에 실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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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교단총회 참관활동 교회재정건강성운동
참관활동2016.10.12 14:31

총회에서 여성은 엘리베이터 걸(girl)?

여성 신학생의 입장에서 바라본 교단 총회


문선영(장신대 신대원 여학우회장)


여학우회 회장으로서, 전국여자신학생연합 부의장으로서 이번 교단 총회를 참관할 수 있다는 것은 매우 좋은 기회였다. 물론 3박 4일 동안 한 시간도 빠짐없이 참석해야 하는 것은 부담이었지만, 여성으로서 20대의 나이에 언제 이 총회를 와볼 수 있을지 생각해보면 영광스러운 자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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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예장 통합 총회를 참관하며 가장 눈에 띄었던 부분은 성비였다. 여성과 남성의 비율은 1:9처럼 보였다. 그리고 이 비율은 아무렇지 않아 보이는 이들에게 너무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여성들의 자리는 ‘전국여교역자연합회’에서 진행하는 ‘여성 총대 할당제 서명’ 부스 이곳이 전부였다. 총회 참관은 여교역자연합회 분들과 함께했는데 총회 자리에서 여성은 정말 찾아보기 드물었다. 통계를 보면 여성 총대는 1.6%라고 하니 말 다했다. 100명 중 한 명꼴인 셈이다.

참 흥미로운 점이 있었다. 전국여교역자연합회에서 여성총대 할당제 서명을 받는 중 남성 총대들의 다양한 반응들이었다.

“여길 어떻게 올라왔는데, 이러면 내 자리 뺏기는 거 아니야? (하하하)”

“여자는 이런 거 못 해. 해봤어야 알지!”

라는 이야기를 하면서 인심 쓰듯 서명을 하거나, 서명에 대해 충분한 설명을 하고 서명 종이를 앞으로 내밀어도 무시하며 지나가는 경우이다. 자신들의 밥그릇 내려놓기와 같이 보였다. 높으신 분들이 인심을 써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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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 중에는 어떨까? 총회 내 여성의 역할의 경우 총회장 혹은 그 외 임원들의 옷을 받아준다든가 아니면 상징처럼 여러 임원 내 한 명 정도 앉아있고 그 이상의 역할은 없었다. 총대로 총회에 참석할 때를 대비한다는 이유로 방청석에서 방청하는 정도였다.

총회는 통합 교단에서 일어난 여러 문제에 대해 함께 고민하고 결정하는 아주 의미 있는 제도이다. 그런데 이 결정은 항상 남자의 몫이다. 교회 안에서의 여성의 비율은 60%이다. 그런데 여성의 발언권(여성 총대)의 비율은 1.6%이며 총회 내에서 의견을 이야기하는 것을 보지 못하였다. 여성 총대들의 성향이 소극적이었던 것일까? 아니다. 여성으로서 총대가 되었다면 개 교회에서 막강한 힘을 발휘하는 사람이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총회에서 할 말이 없다는 것은 분위기의 힘일 것이다. 여성이 말할 수 없는 압도적인 분위기가 있었다.

사진3.jpg총회에서 나를 불편하게 했던 것 중 하나가 여성들의 의전이었다. 각 엘리베이터, 에스컬레이터, 이동통로에 흰 블라우스에 스카프를 맨 집사님, 권사님들이 엘리베이터 버튼을 직접 눌러주며 이동하는 곳들에 대해 알려준다. 왜? 왜 집사, 권사들이 엘리베이터 걸(girl)이 되어야 하는가? 손님들의 손이 불편하기 때문인가? 절대 아니다.

이번 총회 때 제일 큰 이슈는 이단 사면 문제와 여성총대할당제 문제였다. 특히 여성총대할당제는 시작부터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여성위원장 김예식 목사가 여성총대의 1.6%의 현실에 대해 제기하였다. 기존 각 노회 당 1명의 여성 장로, 1명의 여성 목사를 총대로 세워달라고 했지만 이루어지지 않고 있으니 장로든 여자든 1명만이라도 청원한 것이다. 이후는 말하기 창피할 만한 수준이었다.

이만규 목사는 “교회가 현시대의 양성평등 의식과 맞지 않으니, 여성총대할당제로 보장해야 한다” 말하였지만, 비아냥이 돌아왔고, 결국 한국의 정서와 문화에 맞게 조율하라는 의견이 가결되었다.

교회 안에서 여성의 역할은 매우 중요하다. 하지만 그들에게는 희생의 자리만 요구된다. 한국교회 안에서의 개혁은 여성만의 문제가 아닌 우리 모두의 문제이다. 이번 총회에서 교회와 사회의 양성평등 의식 수준 차이가 큰 것을 느꼈다. 여성위원회가 요구한 수준은 기껏 해봐야 4.4%이다. 그런데 이게 우리나라 문화와 정서와 맞지 않는다니 기가 찰 노릇이다.

한국교회 목회자의 재교육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학대학원 3년으로 목회 30년이 결정되는데 30년 목회 안에 재교육의 현장이 없다면 지금과 같은 상황이 전혀 달라지지 않을 것으로 생각된다. 한국교회의 개혁은 스스로 낮아짐, 포기함에서 시작된다고 생각한다. 남성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포기할 때 한국교회 개혁의 첫걸음이 시작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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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교단총회 참관활동 교회재정건강성운동
참관활동2016.10.12 14:21

약자 배려한다는 총회, 여성의 목소리는 담지 못했다

이진수

어릴 때부터 기독교인으로 자라면서 교회에 대한 이런저런 꿈을 꾸고, 다양한 경험을 하게 되었다. 좋은 교회를 향한 어떤 꿈들은 내 삶에서 실제 이루어지기도 했고, 다른 꿈들은 현실에서는 이룰 수 없는 꿈으로만 남아있다. 어떤 경험들은 따뜻하고 좋았지만, 또 다른 경험들은 교회가 무엇인지 심각하게 고민하게 했다.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나는 현재 교회와 관련된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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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회들의 모임인 총회는 어떤 일을 하고 어떻게 목사님 장로님들은 회의를 할까 궁금하던 차에 교회개혁실천연대가 놓아 준 징검다리를 딛고 통합 측 총회를 참관할 수 있었다. 총회 장소인 안산에 도착해보니 교회 주변은 주차할 공간이 없었다. 한참 동안 주변을 살피다가 이웃들에게 피해가 되지 않는 안전한 곳을 간신히 찾아 주차에 성공했다. 마중 나온 간사님과 만나니, ‘참관이란 명찰을 건네주신다. 총대들과 다른 색깔의 명찰을 받고 어색하게 회의장 안으로 들어갔다. 제일 먼저 눈에 띈 것은 본당 정면에 마련된 세월호 유족들의 부스였다. 통합 측이 안산이란 상징적 장소를 택한 이유가 잊혀지고 외면받고 있는 세월호 사건을 기억하기 위한 것이라고 들었다. 그 상징성에 고마운 마음이 들었다. 초입에 살짝 긴장이 풀렸다. 이런 기분 좋은 분위기가 계속 이어질까 하는 궁금증을 안고 안으로 들어갔다. 예배를 마치고 나서 회의가 시작되었다. 본격적으로 회무가 시작되면서 사회자가 전체 총대들에게 신신당부했다. ‘이 회의 상황이 인터넷으로 중계되니 품위를 지켜 주십시오.’ 그런 당부 때문일까? 나는 4일 중 3일을 참관했는데 적어도 내가 참석한 회의에서는 인터넷에서 종종 보곤 했던 일종의 난장판은 보지 못했다. 또 생각했던 것보다 회의 자체는 효율적이고 원활했다. 1500명이란 총대들이 모여서 하는 회의가 과연 가능할까 그런 마음이 들었는데 실제 가능했다. 사전에 정리된 보고들이 올라왔고, 필요한 경우 의견이 개진되었고, 토론도 일부 있었고, 대부분 결론을 내렸다. 첨예한 안건이 있을 때마다 중간중간 고함을 지르는 분들이 종종 있었지만 그럴 때마다 경직된 분위기를 풀어주는 분들의 농담과 재치도 한몫했던 것 같다. 전체적으로는 무난했던 회의였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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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불편한 몇 가지가 있었다. 가장 불편했던 것은 총회 안에 여성의 비율이 너무 낮고 역할이 너무 성차별적이었다는 점이다. 내가 알기로 통합 측은 여성 안수를 가결한 지 시간이 좀 흘렀다. 그러나 전체 총대들 가운데 여성 비율은 겨우 1.6% 밖에 되지 않았다. 이를 해소하려고 총회 기간 중 여성위원회가 노회에서 총대를 파송할 때 여성 1인을 할당해 달라는 청원을 하였으나 이것도 부결되었다. 세월호 부스까지 마련한 총회가 오랜 기간 헌신만 하고 소리를 죽이며 교회를 섬겨 온 여성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이지 않는 모습은 전혀 어울리지 않았다. 총회 총대는 각 교회의 대표들인데 교인의 반수가 넘는 여성들의 의견을 어떻게 수렴하려고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는다. 아마 총회뿐만이 아니라 그 산하 조직들에서도 여성의 비율이 어떨지 짐작이 된다. 여성들을 위한 배려는 아쉬움을 넘어 심각한 문제로 보였다. 그 총회에는 총대가 아닌 여성들도 참여했다. 그분들은 대부분 예배를 돕는 합창단원으로, 총회 임원들의 축하 시에 꽃다발을 건네는 분들이었다. 일종의 같은 느낌이 들었다. 검은색 양복으로 도배되다시피 한 남성 중심의 총회 한복판에 화사한 한복을 입은 여성들이 등장해 꽃을 건네주는 모습은 너무 불편했다. 이제 이런 어색한 광경을 볼 수 있는 곳은 우리 사회에서 교회 말고는 어디에서 가능할까. 이것이 매우 불편하다는 것을 총회에 모인 분들은 잘 인식하지 못하는 듯하다. 그런 인식이 바뀌지 않는 한 교회가 세상과 소통하는 것,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갖추는 것은 매우 어려울 거 같다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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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으로 축하행사에 너무 많은 시간을 할애하고 의미를 부여한다는 느낌을 매우 강하게 받았다. 총회장 이임식과 취임식이 그렇게 거창하고 대단할 필요가 있는가 싶다. 교회를 섬기겠다고 간절히 호소하고 선거를 하였는데 실제 광경은 최고의 명예를 획득하는 개선 장군 같은 느낌이다. 그 자리에 오르기 위해 14억이라는 거액의 선거비용을 교회가 지급하고 사회의 손가락질을 받는 판국에 그런 거창한 축하의식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겨우 일년짜리 직책이어서 실제로 어떤 것도 추진하기 힘든 구조인데 말이다. 그런 이취임식의 화려함과 과도한 예우를 보면서 아무리 생각하고 유추해도 십자가를 지러 가신 예수님은 떠오르지 않았다. 거기 모인 총대들에게 이 광경은 익숙할지 몰라도 외부인인 나에게 이것은 전혀 공감되지 않았다. 만약 젊은 세대들이 이런 모습을 보면 어떤 생각을 할까? 그런 광경이 그들에게 감동을 줄 수 있을까 아니면 역시 나와 다르다며 등을 돌리게 될까. 아는 분이 교회 직분을 맡는다며 연락이 올 때마다 참여해서 느꼈던 그 불편함이 고스란히 이번 총회 축하예식에서 느껴졌다. 이 불편한 마음은 무엇일까?

마지막으로 이단 사면에 관한 논쟁이 생각보다 싱겁게 끝이 난 것이 아쉽다. 통합 측의 이단 사면 문제는 한국교회를 뒤흔들었다. 총회 사회를 보던 한 분이 앞으로 이것 때문에 이단들이 소송을 하게 되면 힘들어진다며 이단 사면 반대 측을 은근히 협박하기도 했다. 다수의 총대도 꽤 격앙되어 있었고 담당자들의 사과를 향한 요구도 집요했다. 그런데 실제 담당자들은 아주 소극적인 사과만 했다. 자존심이 걸려 있어서 그랬는지 모르지만 그것은 사과라기보다 자기변호에 가까웠고 여전히 힘만 주어진다면 같은 일을 반복할 기세였다. 그렇지만 총회는 은혜로(?) 덮는 것을 선택했다. 개별적으로 재판국에 고소할 수 있다고 하고 총회 석상에서는 더는 다루지 않고 넘어갔다. 취재를 위해 계속 예의주시하며 참관하고 있던 기자분들도 어이없어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그렇게 싱겁게(?) 상황은 종료되었다. 그러나 과연 종료되었을까? 그렇지 않을 것 같다. 왜 이단을 해제하고 사면시키려 했는지, 혹 그 대가로 주고받은 것은 없는지, 또 친분이 그 결정에 작용한 것은 아닌지 궁금한 것들이 해소되지 않는 한 상황은 종료되지 않을 것 같다. 앞으로 계속 지켜볼 일이다.

꼬집어 내자면 많은 이야기를 더 할 수 있겠으나 이만 줄이고자 한다. 참고로 참관은 잔잔한 재미가 있었다. 그러나 변하는 시대에 맞추어 고쳐야 할 것도 많아 보였다. 기회가 된다면 내년에도 참관하면서 변화가 생기는지 비교해 보고 싶다.

아 참, 한 가지 빼먹은 게 있다. 총회 기간 내내 아침부터 밤까지 회의를 녹음하고 메모하고 실시간으로 SNS에 올리며 애쓴 교회개혁실천연대 분들의 수고에 감사를 드리고 싶다. 고단하지만 그런 노력 덕에 한국교회가 조금이라도 더 나아지기를 소망해 본다. 수고들 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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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osted by 교단총회 참관활동 교회재정건강성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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