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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관활동

[기장 참관기1] 총회, 무엇을 위한 기구인가

by 교회재정건강성운동 2016. 10. 12.

총회, 무엇을 위한 기구인가

나은수 목사

기장 제101회 정기총회가 지난 27~30일 경기도 화성시 라비돌리조트에서 종교개혁 500주년 내 교회를 세우리니라는 주제로 개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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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의장에는 700여 명이 넘는 목사·장로 총대들이 참석했다. 이번 총회의 분위기가 여느 때와 같지 않은 것은 총회 전 매스컴에 보도된 내용들 때문이다. 사실 기장은 민주화운동과 한국의 현대사에서 정의와 인권에 예언자적 목소리 내며, 사회선교와 교회일치를 위한 활동에도 앞장서고 있는 진보적 교단이다. 그러나 이러한 교단이 이번 총회에는 총장선출 논란과 총무의 공금유용, 성 추문 등의 일들로 곤욕스러운 모습이었다. 그래서인지 이번 총회에서 이루어지는 결정사항들이 초두의 큰 관심사였다.

회무처리에 앞서 주제강연이 있었다. 강연자는 종교개혁이 오늘날 주는 교훈을 교회의 교회다움 회복이라고 했다. 기장 교단 차원에서 볼 때 기장다움의 회복으로 들린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은 지금 기장은 정체성 혼란의 어려움을 겪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기장의 기장다움의 회복이 절실히 필요한 시기라는 것을 역설하고 있음을 느꼈다.

회의장 안은 회무처리와 안건에 대한 이견들을 조율하느라 애쓰는 분위기였다. 이와는 달리 회의장 밖은 긴장감이 맴돌았다. 이번 기장총회의 안건 중에는 총장인준과 총장선출과정에서 빚어진 이사회의 학생고발로 학생들과 교수가 사법당국에 기소된 한신학원 학내문제 처리라는 민감한 사안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학생들은 피켓을 들고 불법 총장선출 문제를 지적하며 총대원들에게 뜻을 전하는 막바지 시위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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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날 총장인준 안은 부결로 일단락되었다. 회의장 안에 있던 학생들과 이를 지켜보던 이들은 환호하며 박수했다. 뜻이 관철되었음에 환영하는 눈치였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기장은 이번 학교사태를 통해 행정의 허점을 드러내고 말았다는 것이다. 또한, 지금 사법당국에 조사받는 학생들과 교수의 문제는 여전히 풀어야 할 과제로 남았다. 해법을 찾으려고 분주한 모습이었지만 초기대처 미흡으로 인해 지금은 손쓰기가 매우 힘겨워 보인다. 사건 발단이 되었던 공권력 개입에 대한 논란이 많다. 과거 한신이 공권력과 맞서 싸웠던 반면 최근 한신은 운영자들로 인해 공권력에 의지해 자신들이 보호받으려는 모습이 있었다. 참 아이러니하다. 학내에서 빚어진 소요의 사태를 공권력의 힘에 의지했어야만 했을까? 또한, 그것이 적법한 조치였을까?

여기에 덧붙여 외국이민노동자 선교의 대부라고 하는 한 목사의 성추행 사건이 주목을 받고 있다. 언론에서 보도한 내용의 심각성에 비해 총회에선 별다른 구체적 언급 없이 넘어가는 모습이었지만 결국은 감싸기 논란의 여지를 남기고 말았다.

이런 차에 물러나는 총회장이 남긴 말의 의미는 기장 교단엔 시사하는 바가 크다. “한국교회 안에서 우리는 남다르다는 묘한 자긍심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엔 우리도 별수 없다는 생각이다. 우리 안에 교만이 없지는 않았을까? 누가 누구에게 돌을 던질 문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을 먼저 추스를 겸손함이 과제로 던져졌다. 자정 능력을 키우는 계기가 마련됐으면 한다.”

이번에 드러난 기장의 두 얼굴은 사회선교에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이 틀림없다. 그래서 인지 총회에 참석한 총대들은 교단에서 일어난 사건들에 대해 말을 아꼈다. 그것은 좋지 않은 사건들이 여론에 부각 되면서 기장도 교단의 위신 실추와 교인 수 감소에 대한 우려 때문인 것 같기도 했다. 기장도 현실 앞엔 어쩔 수 없는 모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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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101회 총회는 특별히 에코총회라 했다. 회의장 밖에는 이를 홍보하는 부스도 있었고, 사전에도 여러 차례 홍보가 있었다. 일회용품 사용 자제는 생태환경 보호를 위한 작은 실천이다. 취지는 좋았다. 그러나 총회취지와 달리 회의장 밖엔 커피를 판매하는 곳과 식당 주변에 비치된 일회용 종이컵 등을 사용하고, 그뿐만 아니라 회의장 탁자에 일회용 물병들이 놓여있기도 했다. 총회 한 직원은 이러한 주변의 모습들이 에코총회에 비협조적이라는 아쉬움을 내비치기도 했다. 좋은 취지를 앞으로도 계속 살려 나가려면 총대원들의 자발적 참여뿐만 아니라, 예상치 못한 일들에 대처하는 총회의 보다 세심한 준비가 필요할 것으로 보인다.

총회의 총대는 각 노회를 대표해서 참석한 목회자나 장로다. 회의장을 메운 총대들은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상정된 안건들에 관심을 두고 이를 지켜보며 제안과 질의를 통해 회의에 참석했다. 그러나 방대한 분량의 보고서, 회의록, 주제강연자료집, 그 밖에 여러 서류를 다 이해하며 회무처리를 한다는 것이 여간 힘겨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또한, 오전과 오후의 회의 참여율이 차이가 있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많이 피곤하리라 생각이 든다. 그러나 총대의 회의 참석은 선택이 아니라 의무라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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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회의 회의 진행에 있어 발언 시간의 문제는 매우 중요한 부분이다. 그래서인지 기장총회는 총대원들의 발언 역시 시간의 3분으로 제한을 두어 왔다. 발언에서 시간제한은 발언자의 발언 내용과 발언 취지를 보다 정확하게 정리해야 하기에 듣는 이들이 장황하게 늘어놓는 발언 내용을 듣지 않아도 됐고 회의 진행의 시간을 아끼는 데 매우 효율적이라고 보인다. 총대들도 제한시간 안에 발언하려 노력했다. 다소 아쉬운 것은 장소가 넓다 보니 뒤에서 손을 들고 발언하려는 총대들을 의장이 미처 발견하지 못해 주변의 총대들이 발언권을 달라고 고함을 지르는 상황이 발생하기도 했다. 그러나 의장은 발언 기회를 공정하게 제공하려고 나름 애쓰는 모습이었다. 개인당 발언 횟수의 제한은 없었지만 같은 안건에 대해서 너무 많은 발언을 한 총대에 대해서 적절하게 제재를 하기도 했다. 제안 발언이나 진행 발언 안건의 발언 시 특별하게 상대를 향한 비하 발언이나 모독적인 발언은 있지 않았다. 듣는 이들 역시 다른 발언자에 대한 의견을 경청하는 태도였다. 이렇게 힘겨운 사투 속에 총회의 많은 안건이 처리되었다. 이제 처리된 총회 안건들이 현장에서 제대로 실행되도록 총회 산하 각 노회와 교회는 함께 최선을 다해야 할 것이다.

마무리에 이러한 생각을 하게 되었다. 총회는 무엇을 위한 기구일까?

총회는 노회를 섬기기 위해 존재해야 하며 노회는 각 노회원인 목사를 섬겨야 하며, 목사는 맡겨진 노회의 지교회를 섬겨야 하는데, 바뀐 듯한 인상을 받게 된다. 교회 위에 목사, 목사 위에 노회, 노회 위에 총회교단의 총회는 분명 가장 최상의 기관임을 인정한다. 하지만 가장 상부의 기관이라 해서 군림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마치 목사나 장로, 일반인들도 총회에서 일한다고 하면 목이 곧아지려 한다. 섬기라고 주어진 역할이 갑질하려는 위치를 확고히 해 나가려는 모습은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데, 왜 자꾸 군림하려고 할까! 이를 보면서 총회의 근본적이고도 본질적인 구조적 모습이 바로 세워진다면 노회, 지교회, 목사는 그 역할에서 위화감 조성 없이 섬김의 바른 모습으로 맡겨진 일들을 해 나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 보았다.

 

※ 이 글은 뉴스앤조이에 실렸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