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장통합 총회가 지난 9월 22일부터 26일까지 동안 제주도 성안교회 제주선교백주년기념교회당에서 열렸다. 한국장로교회가 제주 선교를 시작한지 100주년을 기념하는 의미에서 대한예수교장로회(합동), 한국기독교장로회,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교단이 모두 같은 기간에 제주도 각지에서 총회를 진행했다. 본인은 예장통합 총회에 참관 활동을 하러 3박 4일간 다녀왔다. 목사 총대 706명, 장로 총대 718명 총 1424명의 총회 총대들이 참석한 가운데 개막돼 진통 가운데 총회 회무를 처리했다. 이를 참관한 후기를 편지글 형식으로 대신한다.

안녕하세요! 총대 목사님, 장로님! 긴 총회 일정을 마치고 일상으로 다시 잘 돌아가셨는지요? 저는 아직 피로가 풀리지 않아 어깨가 뻐근하고, 은근한 편두통이 계속되고 있답니다. 총회가 제게 준 감동과 은혜는 한 시간 거리의 비행길만큼 짧았지만 본토와 제주도 사이의 바닷물만큼 깊었습니다. 총회의 결정은 노회와 개 교회에 그대로 적용되어 큰 영향을 끼치는데, 비 총대들의 참여는 얼마나 가능한지, 오늘날 교회의 위상과 역할에 걸맞은 총회인지, 민주주의적 관점 외에 개혁성과 공익성의 측면에서 얼마나 성장했는지가 궁금했습니다. 애통하는 마음과 애정 어린 시선으로 바라 본 감회를 드리고자 합니다.

법과 원칙, 그리고 민주주의

아무래도 대의 민주제를 표방한 회의다 보니 법과 원칙, 민주주의에 대한 잡음이 많았던 것 같습니다. 아마 이번 회기처럼 공천위원이 복잡하고 시간 끄는 경우는 우리 총회에서는 처음 있는 일이었지요. 부총회장 선거에서는 다른 세 후보들이 "불법, 타락 선거 운동한 후보와는 경선할 수 없다"는 성명서를 내고 선거를 거부하기 까지 하는 불상사가 발생했어요. 둘째날 오후부터 시작된 공천위 보고는 마지막 날까지 계속 될 정도로 문제가 많았죠. 저는 총회 산하 유력 기관의 이사, 감사 공천하는 부분에서 많은 분들이 개입을 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믿고 싶지 않지만 세속적인 정치계에서 이권 다툼하는 것과 다를 게 없어 보였죠. “법을 정치적으로 이용하지 말라, 공천위가 진실하지 않다, 위원장은 사퇴하라”며 강하게 꾸짖는 분도 계셨고요. 아무리 그래도 사람을 앞에 세워놓고 그만 두라고 말하는 건 너무 심하지 않나요? 다시는 안 볼 사람도 아닐텐데….” 
 
재판부 보고도 뜨거웠습니다. 9개 발언대 모두에 발언 요청을 했고, 발언 수위도 높았습니다. “법학자로서 이번 발언이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총대권을 사임하겠다”며 위협적인 각오를 다지는 총대도 있었죠. 부산동노회 건만 집행 정지로 동의했다가 형평성에 맞지 않는다는 이유로 특별 심판 모두에 적용하도록 다시 동의하고, 또 상이한 주장이 나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연금재단 이사 공천에 가입자 총회 파송과 공천위원회 선정이 달라서 발생하는 갈등도 극심했어요. 재판국장의 답변도 너무 절절했습니다. 신변의 위협을 받고 있다는 이야기는 제 귀를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선관위원회 보고도 놀라웠습니다. “돈 안 쓰는 선거 없으니, 법을 고쳐야 한다. 돈 선거를 개방하여 죄를 안 짓게 만들자. 이 시간부터 돈 쓰는 선거를 하자” 이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습니다.
 
이렇게 문제가 많은 원인을 규칙을 제대로 이해하지 않고 법대로 하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하셨죠. 하지만 법적 지식이 적어 발생한 문제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신뢰가 깨진 것이 문제인 것 같습니다. 법에 대한 회의가 들었습니다.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혀 처형한 것도 법이었습니다. 지구가 움직인다는 진리를 말한 갈릴레오도 법에 의해 처형당했죠. 강력한 법치국가일수록 사법 살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애당초 법질서가 없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만 그 법을 세울 때의 일관성과 신뢰성이 없는 것이죠. 법을 제정할 때마다 이해관계에 따라 방편적, 수단적으로 만들었기에 법적 충돌이 있는 것 같았습니다.

신학 성향 검증과 이슬람 이단 시비가 웬 말입니까?
 
이단 사이비 대책 위원회의 보고도 의아했습니다. 총대님들의 열화와 같은 반응이 있었죠. “통일교가 득세하고 있는 여수에서 총회를 개최해 달라, 이단 현황판 만들어 교회에 보내달라, 예수왕권선교회에 대한 결론이 주의에만 그치는 것은 약하고 하루 빨리 이단으로 판정해 달라”는 등 격양된 주장이 소통되지 못한 채 남발되었지요. 심지어 이교에 대해서도 적극 대책하자는 주장도 나왔습니다. “이슬람은 대책위가 주관해서 해라. 또한 불교의 정권 도전에 대한 대책도 있어야 한다” 이슬람이라는 세계적 종교를 이단의 범주로 놓고 생각하는 것은 상식적이지 않았습니다. 이단과 이교는 다르다는 기본적 정보도 공유되지 않은 상태였습니다. 이단 위원회가 발표하면 다른 단체의 이단 판정 기준이 되므로, 상담소와 전문위에서 철저하게 조사, 연구해서 신빙성 있게 발표해야 한다는 의견에는 적극 동의합니다.  하지만 그 시대의 과제를 외면하고 소외된 자들을 배제하며, 세속적인 우상과 이데올로기에 무기력하게 종속 당한 것이 더 이단 같지 않은가요?
 
또한 신학교육부의 청원사항은 개인적으로 가장 민감했습니다. 기대가 컸던지 그만큼 실망도 강해서 하루정도 가슴앓이를 할 정도였습니다. 000노회장 길00 목사와 00노회장 김00 목사가 제출한 “(가칭) 교수 신학성향검증위원회” 또는 “(가칭) 문제 강의 예방위원회”를 설치토록 해달라는 건이 문제입니다. 목사님은 헌의안을 가결시키기 위해 "교단 내 신학대학교의 신학적 혼돈 예방 및 훌륭한 목회자 양성을 위하여"라는 명분을 내세우셨지만, 진정 그것을 원한다면 안건을 철회했어야 합니다. 결국 “신학교수 성향 검증은 잣대, 저울이 정확하지 않다”는 이광순 교수의 반대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총회장은 “어떻게 할까요?”를 바로 묻고 허락해 버렸습니다.

이에 늦었지만 몇 마디를 꼭 드리고 싶습니다. 신학 할 자유는 경건함과 교단의 평화를 해치지 않으면서 승인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교단의 평화와 경건함은 이 자유의 억압에 의해 위험에 처할 수 있음을 명심해 주십시오. 검증위가 학문의 자유를 막고 억압하면 중도 통합의 신학 노선에 오히려 혼란이 일 것이고, 좌우를 아우르며 중심에 선 신학이라는 장신대의 입지가 위협 받을 것입니다. 공공비용으로 건립된 신학교는 학생들의 능력을 계발시키기 보다는 억제하기 위해 만들어졌다고 생각하게 됩니다. 누가 누굴 검증해라는 비웃음도 피할 수 없게 되었습니다. 종교성을 많이 담보하는 것처럼 보이는 집단이 가장 주의해야 할 것은 기준이 자기에게만 있는지를 성찰하는 겁니다. 다름이 틀림으로 쉽게 간주되어, 심판하는 죄가 거룩한 종교성으로 포장되었던 역사는 분명 2000년 교회사의 최대 비극이었습니다.

가장 예민했던 연금재단 문제

무리 없이 진행되고 있다는 보고에 많은 분들이 흥분하셨지요. 다른 사안에 비해 절박함과 진정성이 느껴졌던 것은 왜일까요. 어느 총대님은 “내 미래와 직접적으로 연관되는 이익 문제이기 때문에 민감하다”며 너무나 솔직하게 말씀해주셨어요. 총자산은 1700억 원, 가입자 수 9000여 명. 이정도면 저도 거대 자본에 눈과 마음이 쏠리게 되고, 혹여나 내 돈이 포함되어 있다면 신경이 곤두서기는 마찬가지일 것 같아요. 하지만 손실 보상과 이익 예상은 아무리 전문가라도 정확히 하기 힘든데도, 그런 걸 요구하시다뇨! 작년 26억 7000만 원의 손해와 1.3%의 자산 감소율, 펀드의 약 50%정도가 주식투자고 간접 투자 중이라는 등, 평소엔 담 쌓고 지내던 영역의 지식을 알게 되었답니다. 지키고 보호하고 사랑해야 할 것은 돈이 아니어야 하지 않는지, 정말 목사들이 은퇴 이후를 걱정하며 준비해야 할 것은 무엇인지를 심각히 고민할 수 있었습니다.

섬겨야 한다면서요?!

이번 총회 주제는 '섬겨야 합니다'(갈 5:13,전 11:1)입니다. 장로 대통령의 프랜차이즈와 비슷한 느낌이네요. 총회장님께서 개회예배 때 강조하셨던 섬김의 비밀은 낮아짐에 있습니다. 낮아지려면 먼저 높은 곳에서 내려와야 하는 게 당연하죠. 하지만 몇몇 장면들은 그 소망을 무색하게 만들었습니다. 총회 유관 학교(숭실대, 서울여대)의 총장들, 교계 기관(CBS, 여전도회전국연합회, 한국기독교총연합회)의 대표들, 다른 교단 총회장님이 총회 장소에 직접 와서 인사를 하셨지요. 특히 17명의 군종 목사단이 군복무를 멈추고 제주도까지 내려와 인사한 후 총회장에게 지휘봉을 전달할 때는 당혹스러웠습니다. 4군 장성이 퇴역할 때나 받는다는 그 지휘봉을 성총회장에서 보게 되다니요! 정말 엄청난 섬김을 받고 있구나 싶었습니다. 이런 입지에 있는 우리는 진정 낮아지기 어렵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또한 총대들은 성안교회 자원봉사자 525명에게 과도한 대접과 섬김을 받았습니다. 이에 대한 총대님들의 반응은 더불어 섬기는 자의 모습이 아니었습니다. 직각에 가까운 인사를 받고도 그냥 지나치거나, 뒷정리를 깔끔하게 하지 않아 봉사자들의 수고를 더하여 준 것이나, 아무렇지 않게 받기만 한 것 등.

아울러 지역사회의 아픔을 어루만져 주는 섬김을 볼 수 없어서 안타까웠습니다. 외지인들에게 제주도는 그저 이국적 풍경과 관광, 여행의 땅일 뿐이지만, 제주에서 뼈를 묻고 살아가는 주민들에게 제주의 역사는 그저 낭만적이지만 않습니다. 특히 현대사에서 제주민란(1901년), 4.3사건(1947~1954년) 등을 거치면서 기독교인들은 비극을 조장하는 역할을 했던 게 사실입니다. 4.3사건 당시 교회의 입장은 반공 이데올로기를 벗어나지 못했지요. 마지막 날 혼자 갔던 4.3기념관에는 집단 학살 속의 의로운 바람이라는 코너가 있었습니다. 대량학살 속에서도 무고한 희생을 막으려고 노력한 두 분, 평화 협상을 추진한 김익렬 연대장과 예배 검속자 학살을 거부한 문형순 결창처장을 만났습니다. 그 역사는 지금도 진흙 속에 피어난 연꽃과 같은 의인을 찾고 있었습니다. 더불어 2000년 전 철저히 섬기기 위해 몸소 낮아지셨던 예수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발언권이 없어서 총회 기간 내내 한마디도 못하고 듣기만 하여 지면을 빌어 드리고픈 말씀이 더욱 많지만, 이만 줄여야겠습니다. 혹시 제 무례하고 다소 건방진 어투에 불쾌하셨다면, 하나님의 마음을 닮은 대범함으로 이해해 주시고, 그저 '발칙하고 어린 신학생이 귀여운 짓을 했구나' 정도로만 여겨 주시면 감사 하겠습니다. 단, 답장은 정중히 사양합니다. 내년 총회 때 달라진 모습으로 대신 해 주시길 부탁드립니다. 그럼, 언제나 건강하십시오!

김태훈/ 장신대 신대원생·교단총회 참관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