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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관활동

[예장통합참관기2] 교회여! 시대감각 찾아라 (2007년)

by 교회재정건강성운동 2012. 1. 16.

   
 
  ▲  지난 9월 13일 청주 상당교회당에서 진행된 예장통합 총회를 참관하였다. 여러 해 총회를 참관했던 경험에 비추어 전체적인 부분에 걸친 내 소감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사진제공 교회개혁실천연대)

 

한국교회 주요 교단들은 올해도 어김없이 9월, 10월에 정기총회를 실시한다. 나도 해마다 진행해왔던 교회개혁실천연대 참관단 중 하나로 지난 9월 13일 청주 상당교회당에서 진행된 예장통합 총회를 참관하였다. 겨우 하루 나절 참석해서 총회에 대한 무슨 꼼꼼한 참관이 되겠는가마는 여러 해 총회를 참관했던 경험에 비추어 전체적인 부분에 걸친 내 소감을 이야기해보려고 한다.

 

1. 운영이 가장 돋보이는 총회

언제나 가 봐도 예장통합 총회는 다른 어떤 총회보다 운영의 묘가 돋보이고 깔끔하다는 인상을 받는다. 인터넷 홈페이지에 교단소개와 자료를 올려놓은 것도 예장통합 총회가 가장 분명하고 다양한 자료들을 올려놓아 항상 고맙게 생각한다. 그것은 그만큼 구체적인 교단 내 실무를 가장 활발하게 챙기고, 소속 교회 상황을 비교적 잘 반영한다는 증거인 것이다.

한국교회 모든 교단총회는 거의 비슷한 회순과 의제를 가지고 진행하지만, 진행 분위기나 임원단의 진행방식은 하늘과 땅 차이다. 예장통합은 그런 면에서 총회운영에 대해 나름대로의 고민과 운영개선에 비교적 많이 힘을 기울이는 것 같다.

① 총대들의 의견을 공정하게 반영하려는 배려

원활한 회의진행을 위해 예장통합 총회에서만 마련한 특별한 방식이 있다. 바로 총대들이 발언하려고 들게 되는 질의팻말들이 각기 색깔이 다르다는 것이다. 왜 그럴까? 어차피 교단총회는 수많은 총대들(예장통합의 경우 1500명)이 4~5일 일정 안에 과중한 의제들을 다루게 되니 발언하려는 총대들에 비해 발언기회가 턱없이 부족할 수밖에 없다.
그러나 원칙 없이 발언기회를 주다보면 대동소이한 의견만 반복해서 듣게 되고, 결국 다양한 의견의 경청 없이 획일적인 결정으로 끝나버릴 수가 있다. 그런데 통합 측 질의팻말은 각 색깔마다 ‘찬성’ 팻말, ‘반대’ 팻말, ‘의사진행’ 팻말을 구분해 사회자가 발언자의 대체적 견해를 처음부터 알 수 있어 중복의견을 피할 수 있게 된다.

그러나 형식적인 배려장치가 있다고 해도 결국 어떻게 운영하느냐는 사회자의 능력과 재량에 달려있다. 이번 총회장 김영태 목사는 깊은 인내심을 갖고 공정한 조정력을 발휘하여 소수의견 및 반대의견의 기회를 최대한 배려하려 했다. “000 목사님 쪽 의견을 듣는 게 공평할 것 같아서 반대의견의 기회를 줍니다.” 이러한 제도적, 인적 공정성 및 진행능력은 다른 교단들도 적극적으로 배워야 할 좋은 사례라고 생각한다.

② 민주주의의 실험장

올해 총회를 참관하면서 문뜩 이런 생각이 들었다. ‘한국교회는 상식과 민주주의 정신이 가장 뒤떨어진 집단 중 하나다. 그런데 적어도 교회 지도자들이 총회를 통해 개인 및 집단의 의견을 표출하고 조정하고, 절제하고, 인내하고, 공정성을 추구하는 경험을 해보는 것이 한국교회 발전을 위해서도 얼마나 소중한 일인가!’

그렇다. 비록 교단총회가 그리 성숙한 수준은 아닐지라도 그나마 교단 및 소속 교회 발전을 위해 나름대로 고민하고 이해를 조정하는 경험을 갖는 것은 무시 못 할 의미가 있는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그런 경험을 한 총대들이 섬기는 개별 교회에서는 일반 성도들의 의견이 회의 및 교회 운영을 통해서 얼마나 잘 반영되고 있는지를 생각하면 답답하기 그지없다. 개 교회 안에서도 성도들의 다양한 의견들이 무시되지 않고 적극적으로 반영되기를 기대한다.

 

2. 시대와 단절된 총회

위와 같은 긍정적인 면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각 교단총회들에서 변함없이 느끼는 절망감은 한국교회(교단)가 여전히 세상과 동떨어진 자신들만의 세계에 갇혀 있다는 것이다. 일반성도들과 거의 관계없는 ‘그들만의 잔치’요, 세상 돌아가는 현실을 너무 이해하지 못하는 ‘그들만의 세상’이다.

① 더 심각해지는 목회적 환경변화를 전혀 이야기하지 못하는 총회

항상 느끼는 바이지만 교단 총회는 정말 목사, 장로들, 더 분명히 말하자면 교단정치에 관심이 있는 소수의 총대들만의 잔치다. ‘새로 개척한 교회를 어느 노회 경계로 둘 것인지, 회의 순서를 어떻게 정할 것인지, 교단공과 판매대금을 총회로 귀속할 것인지 아니면 소속부서 독립예산으로 둘 것인지….’

이런 의제들이 1년에 단 한 차례 그 교단 중요 현안들을 모두 다뤄야 할 총회에서 깊이 논의되어야 할 주제로 적절하다고 생각하나? 그러나 이 의제들은 모두 이번 통합총회에서 실제로 상당히 많은 총대들이 오랜 시간동안 얼굴을 붉히며 논의했던 주제들이다. 쉽게 말하면 떡고물 싸움이다. 한국교회 성도들의 관심사도 아니고, 바른 신앙생활에 도움 되는 바도 아니고, 세상을 변화시킬 비전과도 아무런 상관없는 이러한 지루한 이야기들이 모든 교단총회에서는 너무나 자연스럽게 중요의제로 논의된다. 슬프지 않은가?

정말 실현 가능성 없는 이야기지만 나는 교단총회에서 이런 이야기들을 듣고 싶다. ‘이번 아프간 사태로 한국교회에 대한 세상의 시선이 매우 비판적인데, 이런 상황을 어떻게 평가해야 하며, 개 교회 및 교단은 어떻게 대처해갈 수 있을까?’ 보수적이든 진보적이든 그건 그 이후의 문제다. 교단 총회가 정말 교단 및 교회의 중요관심사를 논의하는 가장 중요한 자리라면 이러한 요구는 당연한 것 아닐까? 그것만 생각하면 나는 정말 슬퍼진다.

그런 슬픈 인식은 신학교육부 보고에서도 연출되었다. 어느 총대가 (라이벌인) 총신대원 정원이 1000명이나 되는데, 우리 장신대원은 800명밖에 안된다면서 우리 교단의 위상이 말이 아니니 정원을 더 많이 뽑아야 한다는 것이다. 안 그래도 한국교회의 목회자 전체인원이 골머리를 썩이고 있는 판에 단순한 교단경쟁을 위해 목사 예비군을 많이 만들자는 발상이 슬프게만 느껴졌다.

② 달라도 너무나 다른 사회의식

예장통합 교단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는 한국교회의 사립학교법 재개정운동을 사실상 총지휘한 사령부였다. 총회장을 비롯한 각 교회 목회자들의 삭발단식 각오는 결국 정부의 개정 사학법 뼈대를 다 바꿔놓는 위력을 발휘하였다.

그래서인지 올해 예장통합 총회는 사사건건 사학법 재개정에 대한 자화자찬이 거듭된 전당대회 같았다. 이 운동의 총사령관 격이었던 이광선 전 총회장에 대한 감사패를 결의하는가하면, 여성임에도 불구하고 동조삭발에 앞장 선 여전도회전국연합회 임원들에게도 특별한 찬사를 바쳤고, 각 부서보고에서도 이 투쟁(?)에 앞장 선 이력을 자랑스럽게 내보이는 장면이 여러 차례 연출되었다.

사학법 문제는 단순히 교계의 입장만 따져 찬반을 논할 일이 아니라는 것은 온 세상이 다 알고 있는 상식적인 문제이지만 한국교회는 자기 울타리 안의 논리 안에 갇혀 스스로 자화자찬하고 있으니 달라도 이토록 다를 수 있는가? 슬픈 마음이 들었다. 한국교회가 단지 사회에 대한 관심을 갖는다는 것만으로 좋은 게 아니라, 세상과 얼마나 소통하고 있는지가 더욱 중요할 것이다. 그래서 신임 총회장, 부총회장 모두 기독교의 사회적 책임에 대한 적극적 의지를 보였는데 그게 반가운 게 아니라 걱정이 된다. 교회는 결코 자신들끼리만 대우받고 잔치를 벌이며 한가로운 소리나 하고 앉아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구교형/ 교회개혁실천연대 집행위원